크레파스처럼 봐야한다
대표님은 사람을 좋다, 나쁘다로만 보지 않았다.
성준이는 같이 일하고 싶다고 했다. 센스 있고, 욕심 있고, 똑똑하고, 빠릿빠릿하다. 그런데 힘들다는 말을 자꾸 해서 자기 결과물을 스스로 깎아먹는다고 했다.
태훈이는 다르다. 10시면 9시에 와 있다. 일을 시키면 딱 한다. 더 하지도 않고 덜 하지도 않는다. 대신 센스나 변수를 뚫고 나가는 힘은 떨어질 수 있다.
대표님은 그걸 장단점이라고 했다. 안 좋다는 말이 아니었다.
그러다 크레파스 얘기가 나왔다.
황두현 이사님이 크레파스론이라는 말을 했다고 했다. 크레파스는 색깔이 다 다르다. 써보면 어떤 색은 맨날 닳아 있다.
살색, 주황색, 검정색 같은 건 손이 자주 간다. 그런데 어떤 색은 새것처럼 남아 있다.
대표님은 그걸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했다.
"시발 이 색은 크레파스 하나에 12개면 3개는 있어야 되는데 왜 1개밖에 없나"
많이 쓰는 색은 늘 모자란다. 안 쓰는 색은 계속 남는다.
그렇다고 안 쓰는 색이 쓸모없는 건 아니다.
"근데 또 어떻게 보면 그 안 쓰는 거 한 번 쓸 때가 있어. 근데 그거 없으면 안 돼."
사람도 그렇게 봐야 했다.
고객 앞에 잘 맞는 사람이 있다. 품질을 안정적으로 맡길 사람이 있다. 가르치면 정확히 하는 사람이 있다. 알아서 다음 장면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 말은 느려도 신뢰를 주는 사람이 있다. 돈 냄새를 잘 맡는 사람이 있다.
다 자주 쓰이는 색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장면에서는 그 색이 없으면 그림이 안 된다.
다만 아무나 크레파스 상자에 들어오는 건 아니었다.
대표님은 기본 100을 말했다.
10시 출근이면 10시까지 오는 건 기본이다. 계속 10시 반에 오면 그건 다른 색깔이 아니다. 상자 밖이다.
일 맡기면 빠지고, 조기 퇴근하고, 재택한다고 해놓고 놀고 있으면 크레파스 안에 못 들어온다.
"100을 했을 때 크레파스 안에 들어온다는 거예요."
그 다음부터 색깔 이야기가 된다.
느리게 올라가는 사람도 있다. 네 발로 기어 올라가는 사람도 있다. 두 발로 뛰어 올라가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산에 올라간다는 걸 알고 가면 데려갈 수 있다.
안 가는 사람은 못 데려간다.
대표님은 많이 쳐냈다고 했다. 1이 안 되는 사람들. 기본이 안 되는 사람들.
그건 크레파스의 색이 다른 게 아니었다. 아예 색연필통에 들어오지 못한 것이다.
사람을 크레파스처럼 본다는 말은 착하게 봐주자는 말이 아니다.
먼저 100을 봐야 한다. 그다음 색을 봐야 한다.
자주 쓰는 색은 더 눈이 간다. 그래도 안 쓰는 색도 한 번은 필요하다.
대표님이 말한 배치는 그 정도로 미묘하고 복잡했다.